저는 캄보디아에서 시집온 스물일곱살의 인나리입니다. 어느덧 한국에 온 지 6년이 다 되었습니다. 결혼이민여성들이 모두 똑같겠지만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오면 두렵기도 하고, 또 행복하게 살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부풀기도 합니다.

　우리 가족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그리고 남편, 아들, 딸, 저 이렇게 여섯명이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캄보디아에서도 논농사를 짓는 집의 4남2녀 중 다섯째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뒤 도시의 공장에서 돈을 벌어 동생을 공부시키고 집도 도왔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이라는 나라에 시집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네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하는 가족을 보면 무척 부러웠습니다.

　한국 남자는 자상하고 성격도 좋은데다 장모님한테 용돈도 매달 보내준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남자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는 사람을 통해 한국 남자와 선을 보고 행복한 상상을 하며 아홉살 많은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부터 한국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초창기 한국 생활이 마냥 행복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말을 못 알아들으니 가장 답답했습니다. 또 한국 음식을 잘 못 먹고,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웃으면서 무조건 “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답답하고, 우울하고, 불안해 잠도 잘 못 잤습니다. 특히 명절 때 모여서 웃고 떠드는 시집 식구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욱 힘들었습니다. 다른 며느리들은 명절 끝나고 친정으로 가는데 저는 갈 수 없었으니까요. 캄보디아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2남1녀 가운데 막내인 남편은 무뚝뚝하고 말도 잘 안 하는 성격이지만, 자상하게 저를 챙겨주고 제게 의지가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시집와서 1년간은 집에만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이 태어나고 더 힘이 들었습니다. 한국어를 잘 못하는데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직장에 나가고 시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십니다. 쌀·콩도 재배하시지만 수박농사를 가장 많이 하십니다. 저도 농사일을 많이 거들었습니다. 콩밭, 수박 하우스 등에서 일했습니다.

　2011년 한글 공부를 하고 싶어 첫째가 두돌이 될 무렵 읍내에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다녔습니다. 집에서 센터에 나가려면 많이 불편합니다. 버스가 하루에 다섯번밖에 안 다니므로 서너시간마다 한대씩 들어옵니다. 게다가 아이가 어려 업고 다니며 점심도 사먹어야 했지만 열심히 한글을 배웠습니다.

　그러던 2012년 어느 날, 저에게 큰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덕산농협 천세미 과장님이 찾아오셔서 “농협에서 다문화여성대학을 하는데 교육을 받아보라”고 권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농협에 나가서 제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시어머니가 그냥 가라고 해서 갔고, 처음 본 농협 과장님의 인상이 예뻤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감사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제 인생이 달라지는 전환점이 됐습니다.

　집안 농사일을 도와드리며 시간을 내 농협에서 운영하는 다문화여성대학을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더욱이 교통이 불편한 것을 배려해 교육날에는 차로 데리러 와줘 편했고, 아이를 돌봐주는 도우미까지 있어서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제 한국어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과 말이 잘 통하니 사는 게 더 즐겁고 재미있어졌습니다.

　덕산농협과의 인연으로 2013년에는 결혼이민여성 기초농업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문화합창단의 일원으로 전국 합창대회에도 나갔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 국적도 취득했습니다.

　2014년에는 덕산농협 제2기 다문화여성대학에서 한국어 중급반 교육을 받고, 또 결혼이민여성농업인 일대일 맞춤 농업교육을 통해 수박 키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또 결혼이민여성 요양보호사 자격증반에 도전했습니다. 서너시간만 자며 열심히 공부해 당당하게 합격증을 받고선 기뻐서 잠도 잘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구나’라는 생각에 너무 뿌듯했습니다. 정말 바쁘게 보냈지만 무언가를 배우는 게 매우 좋았습니다. 한편으론 남편의 월급을 열심히 모아 우리 이름으로 땅(논)도 600평 샀습니다. 부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올해는 처음으로 직접 수박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농협에서 함께 교육 받았던 베트남 친구가 지난해 수박농사를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간 시부모님 수박농사를 도와드리면서 배운 것도 있고, 농협에서 교육받은 것도 있으니 저 또한 제 이름으로 수박을 키워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소망을 말씀드리자 시아버님은 논에 하우스 여섯동을 지어주셨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올해 수박농사를 잘 지으면 농협에 조합원으로 정식 가입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수박농사를 짓겠다는 맘을 먹자 농협에선 결혼이민여성 전문 농업실습 과정을 지원해 줬습니다.

　봄(3월)에 하우스 농사를 준비하며 몸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비닐을 깔고 수박 모종을 정식한 다음 약을 치고 비료도 뿌려야 했습니다. 초반에는 어떤 약, 어떤 비료를 줘야 하는지 몰라 힘이 빠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관리를 잘못해서 수박농사를 망칠 뻔하기도 했습니다. 모르는 것이 생길 때마다 전문 농업실습을 해주는 지역의 이모님(결혼이민여성 농업인 멘토)께 물어보며 기술을 배웠습니다.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서 하우스 안에서 순치고 열매를 솎아주며 매일 조금씩 자라는 수박을 지켜봤습니다. 하우스에서 일하는 게 너무 덥고 어려워 그만두고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수박이 잘 커 좋은 가격에 팔았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노력해서 번 돈이었습니다. 돈이 주머니에 들어오니 그동안 고생했던 일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이런 맛에 농사를 짓는가 봅니다. 처음이어서 잘 모르니까 그저 시어머님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밥도 잘 못 먹고 일하느라 병이 났습니다. 병원에서 영양제를 맞아 가며 기운 차리고 농사를 올해 직접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아주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입니다.

　몇주 전엔 넝쿨을 걷어내고 하우스에 다시 수박을 심었습니다. 이제는 1차 때보다 수박농사가 한결 쉬워 보입니다. 수박 모종을 정식하고, 순지르고, 젓가락 같은 기둥을 꽂아주고, 순치기, 열매솎기에 이어 받침대도 놓아주고… 한번 경험한 덕분에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어 편합니다. 또 이모님 농장을 다니며 전문 농업실습에서 배운 것도 있어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2~3년 고생하면 농사일이 회사 다니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농사는 힘듭니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이 자유롭고, 틈틈이 공부도 할 수 있는데다 땀 흘린 만큼 나에게 큰 보답을 해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농사일로 성공해서 희망을 찾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생활에 만족합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많이 후회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아직은 내가 한국에 오면서 생각했던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이만큼 한국에서 살아보니 이제 한국 사람이 다 됐습니다. 제 작은 소망은 자식들 잘 키워 대학 보내고, 수박농사 잘 짓고, 남편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하고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주위에선 한국말을 잘한다고 칭찬하지만 아직 부족함을 느껴서 올해 농협에서 운영하는 이민자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신청했습니다. 열심히 배워서 아이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될 것입니다. 남편에게 바라는 건 애들한테 잘하고 친정에 신경 써주는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밥도 잘 먹고 더욱 건강해져 씩씩하게 농사를 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