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평생 농사지은 시골 어르신들이 윤달과 관련해 하시는 말씀이 있다. ‘윤달이 들었으니 파종이 좀 늦어도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파종은 원래 춘분에 하는 것이고, 춘분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 만든 24절기 중 하나이니 농사 일정은 양력과 관련된 것일 텐데 왜 음력인 윤달이 갑자기 끼어들었을까.

　옛 어른들은 24절기에 맞춰서 농사를 지었다. 24절기는 태양의 위치 변화에 따라 나눠지기 때문에 날씨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입춘과 입추는 봄과 가을이 시작되는 시점을,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의 청명은 화창한 봄날씨의 시작을,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음을 말해준다. ‘농사는 하늘이 하는 일’이라고, 농사에 날씨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없었으니 절기에 맞춰 농사짓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춘분에 파종하고, 곡우에 모종을 심고, 망종에는 모를 내고, 추분에는 수확을 했다.

　그런데 조상들은 농사를 절기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태양뿐 아니라 달도 날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절기를 기본으로 하되 달의 움직임을 반영한 음력도 고려해 농사일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윤달이다. 조상들은 윤달이 든 해에 파종은 늦추고 수확은 서둘렀다. 음력 열두달의 중간에 한달이 더 들어서 일년이 길어졌으니 윤달을 기준으로 앞쪽에서는 농사 일정을 늦춰 잡고 뒷쪽에서는 일정을 앞당겨 잡아서 전체 생육 기간을 맞췄다. 열두달 동안 변하던 사계절 날씨가 한달 늘어난 열세달 안에서 변화하니 날씨의 변화 주기도 달라졌음을 감안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처럼 윤 5월이 든 해에는 5월의 길이가 두배가 되니 그만큼 더위가 늦게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집 앞 텃밭에 미처 심지 못한 모종이 있다면 시기를 탓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심어볼 일이다.

　이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