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시 : 2017년 08월 30일
어느 날 견디지 못한 고을 백성들이 모여 왕로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부하들의 횡포가 끊이질 않으니 직접 나서서 다잡아달라는 거였다. 상소문을 펼쳐본 왕로는 정체가 드러날까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붓을 들어 상소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여수타초 오이경사(汝雖打草 吾已驚蛇·너희는 풀밭을 두드렸을 뿐이지만 이미 나는 놀란 뱀이 돼버렸다).’
왕로는 백성을 달래 잠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봤자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 머지않아 상소문에 적어둔 글귀로 꼬리를 잡혔다. 관직을 빼앗기고 멀고 먼 유배지로 쫓겨나게 됐다.
왕로가 상소문에 쓴 글귀를 줄여 유래한 고사성어가 타초경사(打草驚蛇)다. ‘풀을 두드려 그 속에 있는 뱀을 놀라게 하다’란 뜻으로, 생각 없이 한 일이 뜻밖의 결과를 불러온다는 의미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나 쓸 만한 이 고사성어가 병법(兵法)에서는 또 다르게 쓰인다. ‘미리 멀리서 적을 공격해 유인하거나 놀라 도망가게 만든다’란 뜻을 지닌다. 같은 행동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