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말한다. “다이어리 꾸미기? 그거 애들이나 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30대 직장인 김성아 씨는
최근 3년 동안 이십여 개의 다이어리를 쓰고 꾸몄다. 그에게 다이어리 꾸미기는 단순히 ‘애들이나 하는 취미’가 아니다. 정성스레 자신의 일상을 꾸미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이다. 글 서효상 기자 사진 박진주 기자
시간을 붙드는 나만의 방법
“월간 어른의 다꾸 11월호 - 서른셋은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의 준말)하면 안 되나요?” 김성아 씨(33·서울 영등포구 양평동)가 운영하는 개인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지난해 11월 올라온 글이다.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 수차례 ‘다 큰 어른이 무슨 다이어리 꾸미기냐?’며 잔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런 말에 반항이라도 하듯 쓴 제목에서 그가 다꾸에품?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문구, 그리고 다이어리 꾸미기를 좋아하는 30대 직장인김씨는 2020년 8월 SNS에 ‘월간 어른의 다꾸’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매달 자신이 좋아하는 다이어리 종류와 활용법, 새로 장만한 다꾸 용품 등 일상에서 다이어리를 쓰고 꾸미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었다. ‘서른이 넘어서도문구를 좋아하고, 다꾸를 즐기는 사람이 과연 나뿐일까?’‘다꾸에 대한 나의 애정을 드러내면 비슷한 흥미가 있는사람들이 댓글을 달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월간 어른의 다꾸’는 기대보다 많은 ‘좋아요’ 수를 기록하며 벌써 25회를 맞았다.
[스무 살부터 시작된 다이어리 사랑]
김씨의 다이어리 사랑은 스무 살 때부터 시작됐다. 대학에 입학하며 받은 학교 다이어리는 그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했다.“입학하며 받은 학교 다이어리가 제 인생 첫 다이어리였어요. 다이어리의 텅 빈칸이 마치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적고 움직여봐. 다 이뤄질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김씨는 새 다이어리에 각종 학사 일정과 일기를 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끔은 피곤해 미처 일기를 쓰지못한 날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찜찜하고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 김씨는 정신없이바쁜 하루를 보낸 날에도 빠지지 않고 기록을 남겼다. 그래야만 이 드넓은 세상에서 내 인생만큼은 확실히 움켜쥐고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기록의 맛에 빠진 김씨는 서서히 문구 전반으로 호기심을 넓혔다. 매일 쓰는 일기, 이왕이면 질 좋은 종이에 부드러운 펜으로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김씨는 문구, 그중에서도 다이어리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지질이 좋아서, 신상이라서, 한정판이라서 등 갖가지 이유로 사들인다이어리가 집에 쌓이자 김씨는 다이어리별로 쓰임새를부여하기 시작했다. 필사노트·여행일기·감사일기·습관노트·3년일기·영어일기·스크랩북…. 이렇게 다양한 다이어리 중 그는 세 종류를 특히 추천했다. 스크랩북과 3년일기, 그리고 필사노트다.스크랩북은 다이어리 초심자가 기록 습관을 들이기에 좋다. 일기를 쓸 소재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루 동안 먹은것의 포장지, 처방받은 약 봉투, 구매 내역이 담긴 영수증등 스크랩 재료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이렇게 재료를 다이어리에 붙이고 나면 ‘무슨 내용을 쓰지?’ 하던 고민이사라진다. ? 재료에 얽힌 내 생각을 쓰면 돼서다.3년일기는 매일 6줄씩, 3년간 꾸준히 일기를 써 다이어리한 권을 채우는 프로젝트다. 다이어리 한 페이지당 하루씩 날짜를 정한다. 맨 앞 장은 1월 1일, 맨 뒷장은 12월 31일이 된다. 3년간 써야 하기에 한 페이지를 삼등분한다. 매일 그 날짜에 해당하는 페이지를 펼쳐 일기를 쓴다. 그리고 해가 바뀌면 다시 맨 앞 장으로 돌아와 1월 1일부터 적기 시작한다. 그러면 3년 치 1월 1일의 일기를 다이어리 한페이지에 모아 볼 수 있다. 1년 전, 2년전 오늘 무엇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재밌다.필사노트는 책을 읽고 인상 깊은 구절을 옮겨 적는 다이어리다. 책 내용을더 꼭꼭 씹어 먹을 수 있을뿐더러 오래돼 기억이 나지 않는 구절을 찾아보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며 한 권, 한 권 쌓여가는 필사노트를 보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일상을 가꾸듯 다이어리도 예쁘게]
꾸준히 기록을 하다 보면 다이어리를 예쁘게 꾸미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이럴 때 찾게 되는 게 다꾸 용품이다.김씨는 다꾸를 위한 필수용품으로 알파벳·숫자 스티커와 날짜 스탬프를 꼽았다. 알파벳·숫자 스티커는 다이어리별로 이름을 ?여 구분하기 좋다. 날짜 스탬프는 어느다이어리에나 통일감 있게 날짜를 표시하기 유용하다.이 밖에도 풀테이프는 스크랩북 재료를 깔끔히 붙이기에, 포토프린터는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바로 인쇄하기에, 마스킹테이프는 흰 종이에 감성 한 스푼을 채우기에 좋다. “이게 꼭 필요하냐?”라는 물음엔 바로 답하기 어렵지만, 있으면 다 쓰게 된다는 게 김씨의 지론이다.“이왕 손 글씨로 기록할 거, 이것저것 붙이고 예쁘게 꾸미면 좋잖아요. 나중에 다시 열어볼 때도 열심히 꾸몄던 페이지는 그 당시가 훨씬 생생하게 떠오르고 재밌어요. ?일상을 좀 더 정성 들여 남기는 거죠.”김씨에게 다꾸는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는 유일한 방법이다. 앞으로도 그는 매일 다이어리에 손 글씨를 남겨 인생을 차곡차곡 쌓아나갈 테다.
